한줄평
연출이 김태호 프로듀서, 출연은 이효리. 당연히 봐야 할 프로그램 아닙니까?
리뷰
'공항 패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행기라는 교통수단은 아직도 럭셔리함의 상징이고, 비즈니스를 위해 상시 공항에 들락거리는 수많은 연예인들이 오직 보여주기 위해 착용하는 화려한 착장은 거의 문화처럼 고착화되었습니다. 유명한 연예인들에게는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에서 공항 패션을 위한 제품을 따로 협찬할 정도로 홍보 효과도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9첩 반상도 매일 먹으면 질리지 않습니까? 이제는 그들이 뭘 입고 출국을 하든 귀국을 하든 관심이 생기지 않습니다. 이런 식상함이 유행이 사라지는 과정 중에 한 단계겠지요. 이맘때쯤 언제나 남들보다 한 발 앞서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는 '트렌드 세터'가 등장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2박 3일 일정에 캐리어도 없이 두툼한 롱패딩에 백팩 하나를 대충 매고 손질하지 않은 생머리에 캡 모자를 쓴 여성이 통화를 하며 터덜터덜 걸어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도시인 서울을 뒤로하고 제주도로 귀농한 이효리 씨입니다. 20년간 동고동락한 매니저와 그대로 함께하는 그들의 결속력도 돋보입니다. 여전히 서울에 집을 소유하고 있을 거라는 세간의 의심을 종식시키듯 지인의 집에서 신세 질 생각을 하는 그녀. 그 상대는 한국의 메릴린 먼로, 엄정화 씨였습니다. 흔쾌히 허락하는 통화 내용만 들어도 다정한 선후배 사이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효리 씨는 Mnet의 시상식인 MAMA 최초의 여성 호스트가 되어, 최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의 리더들과 합동 무대를 하게 될 예정입니다. COVID19로 인해, 사전에 충분한 연습을 하지 못하고 시청자들에게 무대를 선보이는 것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녀의 일상에서 보여주는 소탈한 모습 때문에 그녀가 슈퍼스타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하지만, 전전긍긍하는 이효리 씨를 보니 새삼 그녀가 프로라는 것을 상기할 수 있었습니다.
리허설을 위해 도착한 방송국, 화려한 복장을 입고 복도를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단연 눈에 띄는 이효리 씨. 대세인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리더들은 그녀의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에 깜짝 놀라며 놀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효리 씨의 그런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강렬한 존재감을 뽐낼 수 있기 때문에, 출근 복장 따위로 그녀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닐까요?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슈퍼스타, 단기간이 이뤄낼 수 있는 일도 아니며 시간만 있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요.
엄정화 씨의 집에 도착한 이효리 씨, 속옷을 빌려 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매력적인 갭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파자마까지 빌려 입은 이효리 씨와 엄정화 씨는 긴장도 풀 겸, 술을 마시게 됩니다. 인생의 절반이 넘는 세월을 카메라 앞에서 오직 보이는 삶을 살았던 천생 연예인들. 특별하다고만 생각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평범한 이들의 것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습니다. 거침없어 보였던 이효리 씨도 두렵고 막막했던 시절이 있었고, 선배였던 엄정화 씨의 조언에 힘을 얻고 기댈 수 있었다는 이야기. 그런 선배가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를 털어놓으며 그녀들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대중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은 행운이지만, 그 막연한 것들을 위해 그들이 해야 할 경쟁은 노력으로 정당하게 쟁취할 수 있는 성질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결과가 확실하지 않은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로 이어질 겁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매번 새로운 도전을 해온 그들이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대망의 MAMA 무대. 이효리씨는 블랙 보디슈트에 강렬한 오렌지 색상의 깃털 장식의 화려한 숄로 포인트를 줬습니다. 돋보였던 것은 의상뿐만이 아닙니다. 춤이라면 최정상인 리더들과의 콜라보임에도 이효리만이 풍길 수 있는 아우라는 여전히 독보적이었습니다. 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는 이들도 극히 소수이지만, 몇 세대의 교체가 이루어지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톱클래스를 유지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이제 막 빛을 보기 시작한 리더들과 아직도 정점에 서있는 그녀의 무대를 본 사람들은 수많은 감정을 느꼈을 겁니다. 앞으로도 오랜 시간 빛날 이효리 씨, 또 무대에서 뵙고 싶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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