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국민 예능인 1박 2일은 어느새 15년 동안 공영방송의 주말 황금 시간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시즌 1부터 메인 MC인 강호동뿐만이 아니라 인기 혼성 그룹 코요테의 김종민,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이수근, 최고의 아이돌 출신인 은지원, 팬덤이 작았던 밴드 '뜨거운 감자'의 김C, 히트곡을 연달아 작곡한 래퍼 MC몽, 당시에는 아직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던 이승기 등 걸출한 인물들을 무수히 배출했습니다. 1박 2일의 진가는 사실 출연진들보다는 연출진들의 역량에서 발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능계의 대부라 불려도 과언이 아닌 프로듀서 나영석의 진정한 스타트 지점도 1박 2일이었습니다. 그가 후배 프로듀서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나간 이후에는 이미 출연진들 간의 호흡으로 프로그램이 계속 승승장구하는 듯했지만, 전 국민의 사랑을 받던 시즌 1의 출연진들의 대거 이탈하게 됩니다. 조금만 배가 부르면 사고를 치는 메인 출연진들의 방출 이후, 다음 시즌들의 연이은 실패로 그 명성도 점점 과거의 일로 소강되다가 끝맺음을 하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프로듀서 방글이가 지휘를 하면서 출연진의 구성에는 별반 다를 점이 없었음에도 시청률에 이변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시즌 1의 연출진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출연자들의 행동에 제약을 걸고 그들과 마찰을 빚는 모습을 방송에 그대로 노출했습니다. 이는 훌륭한 전략이었습니다. 이미 국내의 예능은 해외에서 아류작들이 수없이 나올 만큼 자극적으로 진화한 상태라, 어지간한 임팩트 없이는 더 이상 시청자들의 주의를 끌 수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번에도 잡음은 존재했습니다. 여성 프로듀서인 방글이의 지시에 다소 과한 반응을 보였던 남자 배우가 있었습니다. 역대 남성 연출진들의 지시에 출연자들이 보인 순종적인 태도와는 극명하게 상반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한국인들의 유교적 정서로는 묵인되기 힘든 개인적인 스캔들로 하차했습니다. 많은 관심을 받았던 만큼 시청자들의 비난의 강도도 거세져, 성실한 연출진들과 출연진들이 미꾸라지 한 마리 때문에 또다시 무너지는가 싶었습니다만 다행히 솟아날 구멍이 있었습니다.
결혼 소식 이후로 공식적인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배우 한가인이 남편인 연정훈을 지원사격하기 위해 1박 2일에 출연한 것입니다. 좋은 표현으로는 전통적이지만, 매우 구시대적인 전형적인 여성상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바를 확실히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굉장히 유쾌했습니다. 연정훈 씨 또한, 평범한 남성상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는 자기주장이 없는 주체적이지 못한 사람을 여성스럽다고 표현하는 한국적인 남성이 아니었습니다. 한 번도 한가인 씨에게 언성을 높이거나 고집을 피운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부부의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밖에도 촬영이 진행되고 장소가 계속 바뀌는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아내를 배려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는 연정훈 씨는 그야말로 현대 사회에서 원하는 이상적인 남성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직도 한가인 씨의 이미지를 대체할 배우가 없는 상황에서 그녀에 대한 현실적인 수요는 아직도 존재합니다. 한가인 씨 개인의 삶에 참견할 권리는 누구도 가질 수 없겠지만, 주제넘게도 그녀의 삶이 사랑으로 가득하길 바랐었던 팬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좀 놓였습니다. 그렇지만, 다음 생의 기회가 있다면 결혼은 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당당함까지 가지고 있는 한가인 씨와 그 말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고 따뜻한 눈빛을 보내는 연정훈 씨까지 아주 보기 좋은 회차였습니다.
프로듀서가 여성으로 바뀐 이후로 다시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한 국민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이 앞으로도 건승했으면 합니다. 그러나 천편일률적인 바보 캐릭터들의 고군분투 포맷을 계속 고집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익숙한 것은 일정한 시청률을 보장한다는 안정성은 있지만, 버라이어티라는 이름과는 전혀 맞지 않는 방향을 띄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성 출연진들이 아닌 여성 출연진들의 구성도 고려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선하지 못한 아저씨들은 식상하니까요. 이미 국내 여성들이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예능에 출연할 때마다 히트를 치고 있는데, 점점 트렌디함과 거리가 생기는 고리타분한 멤버들 구성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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